영국인 100% 런던 직장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일하는 느낌이 어떤지 궁금하신 분 런던 일상



* 원래 기억력이 별로 좋은 편이 아니므로 이것은 내 머릿속에서 감정적으로 더 부풀려지고, 유일하게 기억에 남는 몇 가지 상황을 가지고 쓴 글입니다. 런던 직장생활이 다 그렇다는 것은 절대 네버 결코 아닙니다.




지금 직장에서 한국인 동료들이 가끔 묻는다. 런던에서 직장생활 할 때 어땠냐고.  

그래서 생각해보니, 내가 런던에서 첫 직장을 잡고 3~4개월 정도밖에 안되었을 때. 한창 충만했을 때 마구마구 런던 생활을 찬양하면서 썼던 예애애애애애전 블로그 글이 생각났다. 
그때는 '런던은 이러이러하게 차별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고, 내 동료들 중에서는 대학 안나온 사람들도 있을 정도로 기회가 균등하게 주어진 나라이고, 내 런던 연봉이 서울 연봉보다 딱 두배고, 업무 강도 세지 않고 어머 어쩜 이렇게 좋은 나라가!' 라고 썼던 것 같다. 
그러다가 좀 쓴 맛을 보고 나서는 앗ㅅㅂ나외국인노동자야 모드로 급 전환했던 기억이..



내가 런던에서 다녔던 마지막 회사는 영국 내 랭킹 2위 자선단체였다. 그러므로 어쨋든 직원의 대부분은 남을 돕는 데에 기본적으로 의미를 두는 사람들이었고, 그러므로 파워헝그리 마초 알파남이 대세인 곳은 아니었다. 그건 그 전 직장이 그랬었고.

이건 전에도 썼던 것 같은데, 맥밀란 직원 수는 영국 통틀어 천 명 정도 되었고, 내가 알기로는 내가 유일한 한국 국적을 가진 직원이었다. 같은 팀 동료들은 나 빼고 100% 영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성애자 여자들이었고, 나이는 20대 후반, 30대 초반. 다른 팀도 별로 다르지 않았다. 
이건 런던 직장으로는 굉장히 특수한거다. 런던은 워낙 코스모폴리탄 도시라 남편 직장에서는 남편이 유일한 영국인이었고 나머지는 다 유럽계 이민자들이었다. 남편과 내 친구 그룹도 국적으로 보면 한국, 영국, 루마니아, 호주, 이탈리아 등으로 마이 섞였어!




상상을 해보자. 

지금 당신이 일하는 직장에 새로운 동료 까를레타가 들어왔다. 파푸아뉴기니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한국에는 스물 다섯에 유학생으로왔다고 한다. 얼굴색은 까무잡잡하고 머리가 곱슬거려서 딱 봐도 한국인 아닌데 한국말은 잘한다. 의사 소통에 전혀 문제 없다. 뭐 그러니까 면접에 붙었겠지.. 같은 팀에서 나랑 비슷한 프로젝트를 맡아서 하게 되었단다. 

가만있어보자. 파푸아뉴기니가 어디에 있는 나라더라? 뭔가 아프리카스럽기도 한데? 지도를 보니까 인도네시아랑 호주 사이 어딘가에 있는 나라네? 아! 그러고보니까 내 베프의 남편의 여동생의 첫사랑의 직장 동료가 파푸아뉴기니 사람이라고 들은것도 같다! 오오 요새 한국에 파푸아뉴기니 사람 많이 오나보네.. 근데 거기서 여기까지 와서 한국말도 잘하고.. 타산지석 막 이런 사자성어도 곧잘 하네? 쫌 대단한데? 

까를레타 첫날이라 팀원들이랑 같이 환영 점심을 먹으러 갔다. 분명히 얘가 한국말을 잘 하는걸 알긴 하는데, 무슨 주제로 대화를 해야될지 솔직히 좀 모르겠다. 아몰랑 나는 수진씨랑 쇼미더머니 얘기해야지. 근데 나만 그런게 아니었다. 아차 점심 먹고 보니까 아무도 까를레타한테 말을 안걸었..;; 아 얘 좀 뻘쭘했겠다. 앞으로 좀 잘해줘야지 아 근데 얘랑 무슨 얘기 하지?   

* (눈물 좀 닦고) 이게 내 직장 첫날 이야기다. 내가 처음 맥밀란에 들어간 날 팀원들 다같이 펍에 가서 먹는데 거짓말 안하고 나한테 단 한명도 말을 걸지 않았다. 나는 내 앞쪽에 앉은 수지랑 소피가 그 전날 수지가 만난 남자 얘기하는걸 조또 모르면서 웃으면서 맞장구 치는척 하면서 열심히 밥을 코로 먹었었다. 
내 동료들은 다 평범한 영국 아이들이었다. 일도 잘하고, 똑부러지고, 나한테 나쁜 감정을 품고 있었다기보다 그냥 같은 영국인보다 내가 쪼금 불편한 정도였다고 할까. 그랬을거다. 당신이 파푸아뉴기니에서 온 까를레타를 딱히 싫어하지 않는 것처럼. 


물론 다음 승진에서 까를레타와 당신이 물망에 올라서 경쟁하고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까를레타는 파푸아뉴기니 사람이 원래 그렇다고 알려져있듯이 졸라 근면성실하다. 담배도 안피고 화장실도 안가는 것 같다. 미팅에 들어가면 나보다 말빨은 좀 딸리는데, 평소에 졸라 열심히 나보다 빨리 일하고 야근도 마다하지 않는다. 아 역시 남에 나라에서 성공해서 파푸아뉴기니에 돈 보내고 싶어서 그러는건가? 암튼 아무리 그래도 같은 한국인인 나를 승진시켜주겠지? 

* 아마 이건 그 전 런던직장 동료들이 생각했을법한 시나리오. 참고로 거기도 한국인 주재원이나 나같은 극소수의 현지채용 한국인 빼고는 99% 영국인. 채널 마케팅 매니저(나 말고 다 영국인)가 일곱명인가 그랬는데 그 중에서 내가 마케팅 매니저로 승진하고 나서 한동안 왕따 당했었다ㅠㅠ


까를레타는 한국 생활이 불편할 것인가? 한국말 잘하고, 월급도 한국 평균보다 높고, 멀쩡한 직장에 집도 샀고, 한국 남자랑 결혼도 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그녀의 일상생활에 딱히 불편한 점은 없을 것이다. 근데 보아하니 한국인 친구는 없는 것 같다. 그건 까를레타가 좀 성격이 내성적이라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 내 런던 생활은 불편했는가? 분명 아니었다. 나는 의사소통에 전혀 문제 없고, 집 사는데 필요한 법률 서류나 은행 서류들도 남편보다 내가 더 꼼꼼하게 다 읽어보고 수정할 곳 수정하고 그랬다. 영국 마케팅, 펀드레이징 분야에서 7년 가량 일하면서 좋은 경험도 많이 했고 직업적으로도 아주 많이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내 런던 연봉은 런던 평균보다 높았었고, 동료들이랑 베프 안먹어서 그렇지 같이 가끔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미팅도 많이 했다. 그렇지만 런던 8년 생활 후 아직까지 연락하는 영국인 친구는 많이 잡아도 두 세명밖에 안된다. 물론 내가 사람 만나는 걸 그닥 좋아하지 않아서 그런거기도 하고 ㅎㅎ 

* 생활에 불편하지 않아도, 누가 나한테 '니네 나라로 돌아가!' 안해도, 내 동료들이 내게 악의가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어도, 매일 매일 겪는 일상적인 마이크로 소외감은 분명 영혼을 갉아먹는다는 것을 나는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맥밀란 입사 후 2개월째인가.. 아직 회사친구가 아무도 없었을 때, 3일짜리 사내 트레이닝을 다른 지방도시 리조트로 갔던 적이 있다. 2일째 저녁에는 영국인들이 환장하는 코스츔 파티가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같은 팀원들이랑 조를 짜서 움파룸파족에 월리에 옷 맞춰입고 갈 때 나는 동네 파티샵에서 산 셜록 모자 하나 쓰고 혼.자. 들어가서 혼.자. 서있다가 시팅 플랜정해져 있지 않은 갈라디너에서 남는 자리 어찌저찌 찾아서 길고 긴 코스요리가 나오는 동안 양 옆에 앉은 60대 동료들 (아마 그들도 20대 언니들 노는게 못 낀 ㅋㅋ)과 그들 아들래미 얘기 들어주면서 밥 먹었다. 아아아 내 꼬리꼬리한 찌질함이 느껴지시는지? 그 트레이닝을 다녀오는 기차 안에서 나는 갑자기 기분이 바닥 끝까지 가라앉으면서 (그 전에 자주 겪었던) 우울증 증세를 다시 느꼈고, 바로 설탕을 끊고 햇빛을 많이 보고, 운동을 하는 등 조치를 취했었던 기억이 난다. 


난 한국의 지금 직장에서 은퇴할 생각은 없고, 기본적으로 다른 문화를 겪어보고 다른 언어를 배우는 것을 좋아한다. 남편도 비슷하게 역마살이 있어서 아마도 한국에서 몇 년 더 살다가 남편과 머리를 맞대고 다음 나라를 고민하기 시작할 것 같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내 나라가 아닌 곳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어른으로서 나와 내 가족을 챙기면서 산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그리고 내가 겪었던 그 마이크로 소외감을 지금 한국에서 한국 직장에 다니는 남편에게 강요하고 있는 것 같아 아주 미안하다. 


헬조선 탈출과 이민을 고민하고 계신 분들께 환상을 깨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저는 그랬다고요 ㅋㅋㅋ 




한국에서 1년 산 후 느끼는 서울 vs 런던


런던을 떠나서 한국에서 직장생활한지 1년 1개월 기념. 
본격 '런던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살았던 기억' 끄집어내기 포스팅.


런던을 떠난 후 1년이 더 지난 지금 내가 기억하는 서울 vs 런던 생활 및 직장.


1. 
내 런던 마지막 직장이었던 맥밀란 캔서서포트는 만약 런던에 다시 돌아가서 살게 된다면 아마도 다시 면접 보러 가지 싶다. 그렇다고 맥밀란이 내가 다녔던 회사 중 가장 즐거웠던 곳은 절대 아니다. 내가 다녔던 회사 중 가장 돈을 많이 준 곳도 아니었다. 그래도 참 괜찮은 곳이었다. 아 그래 일은 이렇게 해야하는거지!! 라고 무릎을 치면서 일했었다. 


2. 
확실히 런던 직장은 한국과 비교했을 때 업무 강도가 훨씬 적다. 9 to 5 보장. 점심시간을 혼자 오롯이 쓸 수 있고 가끔 회사 옆 짐에 가서 운동하고 오기도 했다. 

휴가는 1년에 25일 + 병가는 따로. 휴가 쓰거나 아프다고 빠지는 데에 눈치 본 적 없고 야근해본 적은 한번인가.. 그때도 야근한 거 상사한테 들켜서 1대1 면담하고 상사가 '왜.. 내가 너무 일을 많이 줬니? 지금 니 일 중에서 빼서 다른 팀원한테 넘겨줄게' 라는 말 들었다 ㅋㅋ 내가 '사정해서' 내 일 다른 사람한테 안넘기고 그 뒤로는 야근 안하고, 오히려 심심하다고 일 좀 더 달라고 해서 다른 팀원들 프로젝트에 투입되어서 이런저런 재밌는 것들 더 해볼 수 있었다. 


3. 
런던 직장은 한국 직장보다 개인사를 묻는 경우가 훨씬 적고, 회식은 거의 점심으로 대체하므로 일단 회사에 시간을 뺏기지 않는다. 사실 직장인의 자산은 '시간'인데, 내 시간(과 서비스)을 회사에 바치고 거기에 상응하는 돈을 받는 계약인데 업무 시간 외에도 더 시간을 뺏는 건 양아치지. 
회사에는 커밍아웃한, 아니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이 그냥 봐도 알아볼 수 있는 성소수자들이 많았다. 회사 리셉션 언니가 어느 날 성 정체성을 바꾸자 회사 인사과에서 전체 이메일을 돌려서 'XX가 오늘부터 남성으로 생활하기로 했다. 이제 모두 그를 새 이름으로 부르고, 첨부된 성소수자에 대한 사내 매뉴얼 참고 바람' 했던 게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난 대부분 게이 남자 동료들하고 친했었다 (이건 영국 여자애들이 나랑 잘 안놀아줘서 그런것도 있고 흑 ㅠㅠ)


4.
어디선가 '영국 연봉이 한국의 두 배, 그러나 물가도 두 배'라고 하던데.. 나도 영국에 살 때는 그게 맞다고 착각했는데, 한국 돌아와보니 그렇지도 않다. 파운드화가 떨어진 지금, 그리고 한국 세금이 더 적으므로 나나 남편이나 통장에 꽂히는 금액 기준으로 영국이나 한국이나 그닥 차이 없다. 


5. 
그럼, 한국이 정말 영국 물가의 절반인가? 

- 카테고리마다 다르긴 하지만, 일단 절반은 절대 아니다. 집값은 두 나라 다 최근 5년간 버블버블해서 엄청 뛰었지만 그대로 아직 영국이 30% 가량 더 비싼 것 같다. 우리가 떠나기 전에 샀던 1베드룸 집값이면 한국에서는 3베드룸 정도 사겠더라. 그런데 한국엔 아직 '상대적으로 싼 금리로 오오오오오래 돈을 빌려주는' 모기지가 영국만큼 흔하지 않아서 집 사는 건 영국이 좀 더 쉬운 듯. 하지만 난 부동산 전문가가 아니므로 아몰랑

렌트도 마찬가지인데 한국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전.세.라는 하늘이 주신 제도가 있으므로 부모님 찬스를 쓴다면 렌트비가 '0'이라는 엄청난 특혜를 누릴 수 있다. 이 전세 개념을 외국 친구들이나 시댁 식구들한테 설명하느라 애먹었다. "그래서 그 큰 돈을 나중에 돌려받는다는 걸 어떻게 확신할 수 있냐고"가 그들이 가장 이해하기 힘들어하는 부분이었다. 

- 그밖에 런던이 확실히 두 배가 맞는 건 교통비, 택시비, 외식비, 미용실 등 사람이 직접 하는 서비스 직종.

- 런던이나 서울이나 비슷한 건 옷과 같은 공산품. 사실 옷은 내가 쇼핑을 안해서 잘 모르긴 하지만 런던이 서울보다 더 싼거 같기도 하다. 슈퍼마켓에서 과일, 야채 사는 비용도 비슷하다. 비슷한 거리를 날아간다고 했을 때의 저가항공 비용도 비슷한거 같다. 그러니까 런던에서 암스테르담 가는 이지젯이나, 서울에서 도쿄가는 저가항공이나 비슷했었다. 

- 런던이 더 싼 것: 고양이 사료, 한국은 wet food가 비싸다보니 간식으로 조금씩만 먹이는 것 같다. 츄이는 wet food가 주식이었으므로 쭉 드셔야 해서 밥값은 한국이 더 비싸다. 
이건 뭐 당연한 거지만 거기에서 많이 먹는 식재료는 영국이 더 싸다. 블루베리, 라즈베리, 치즈, 퀴노아, 내사랑 후무스 등등. 
그리고 NHS가 공짜이므로 런던 의료비는 당근 한국보다 싸다. 사실 한국도 다른 나라에 비하면 엄청엄청 싼건데.. 

- 런던이 절대지존 한국보다 졸라 더 비싼 것: 기술직 프리랜서 노동 비용. 전에 살던 집에 수도관이 터져서 물이 콸콸 새는 상태에서 너무 급해서 구글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번호로 plumber 배관공 불렀었는데 5시간인가 걸려서 고쳐주고 200만원 + 긴급 출장비 따로 받아가셨다. 
집 인테리어나 뭐 고치는 비용 및 electrician 전기공? 불러도 한국의 3~4배는 줘야 하는것 같다. 그래서 다들 DIY에 미쳐있는게지.
하지만 사람이 직접 하는 서비스에 확실히 런던이 더 정당한 비용을 지불하는 건 맞다. 한국 노동자 임금은 너무 심하게 싼 느낌. 


6. 
그렇다면 런던이 헬조선 서울보다 살기가 좋은가? 
스님이 그러셨지요. 누구나 다 자기가 만든 지옥 속에서 산다고요. 저는 아직까지 서울이 심리적으로는 더 편안해요. 그 이유는 다음에 시간날 때 설명하는걸로.. ㅎㅎ 





Note from Calais - 2016년 5월 일기


거의 1년 전, 나는 혼자 프랑스/영국 국경(이라기보다 가장 가까운 port가 있는) 도시인 Calais로 봉사활동을 다녀왔었다. 

Calais 시내에 혼자 작은 방을 빌려 머물면서 아침이면 난민촌 근처 웨어하우스로 출근을 하고, 저녁에는 난민촌에 가서 난민들에게 영어를 가르친다는 명목 하에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곤 했었다. 

그 때의 경험은 정말 강렬해서 나는 밤에 잠을 설쳐가며 너무 많은 생각을 했었고, 내가 난민촌에 가는 것을 못마땅해 했던 봉사단체 간부는 모두가 있는 앞에서 (내 이름은 거론하지 않았지만) 나를 면박 주기도 했었다. 보통 굉장히 diplomatic한 영국/유럽 문화에 익숙했던 내게 그것은 너무 견디기 힘든 비난이었고 그때문에 심적으로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면박의 이유는 외부인인 내가 난민촌에 공식적인 직함없이 들어갔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남의 동네/집에 침입한 걸로 볼 수 있겠다. 일부는 인정하지만, Calais 난민촌에 문지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도움을 주려고 들어갔던 것이 그렇게 나쁜 일인가 싶긴 하다.)

그 후 Calais 난민촌은 공식적으로 문을 닫았다. 그곳에 있던 7천여 명의 난민들이 프랑스 각지로 흩어지고, 파리에서 노숙을 하기도 하고, 다시 Calais로 슬그머니 돌아와 영국행 기차나 트럭에 목숨을 걸고 숨어들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경찰력을 동원해 그들을 쫒고, 다시 돌아온 난민들에게 먹을 거리, 입을 거리를 주려고 모인 봉사단체와도 종종 마찰을 빚는다. 

지나가다가 불쌍한 강아지만 봐도 안타까워 어쩔 줄 몰라하는 프랑스인들이 난민이라는 이유로 다른 나라 사람을 그렇게 가혹하게 대하는 것이 기가 찰 노릇이지만 이미 세상에는 그런 부조리가 너무 너무 흔하고 흔하다. 

오랫만에 예전 노트를 뒤적이다가, 에버노트에 끄적인 그때의 일기를 보았다. 그 중 몇몇은 잊고 있었던 느낌이라 나도 놀랐다. 

It's my second day in Calais. I've been working at the warehouse sorting donated clothing for distribution. This afternoon, I went to the Jungle and met Sudanese, Afgan, Eritrean refugees. I still don't know what to make out of this overwhelming experience.

First, I just realized there is a huge, ginormous gap between posting and liking some stuff on FB and actually getting your butt down here and volunteering in camp. Although one can't ignore the power of communication and influencing masses online.

Second, I saw some positives; the energy and dedication of most of the volunteers I met there and instant bonding that we made with each other. It was interesting how every single person was asking where I was 'originally' from. And how little French volunteers were there. But everyone was basically eager to help and really cared about refugees.

Thirdly, the things I saw at the camp was quite different from what I expected. There were no women in sight,  all were men and some of them were there for over 10 months. Being me, it was difficult to be a facilitator of conversation and I'm afraid I might have asked or said something inappropriate like family,  travel,  future,  dreams.. I wish I hadn't talked about that. Also I wasn't sure about the high street and the restaurants and shops there. It costs €12 for a lunch meal and two teas which is cheap for Calais but never cheap for refugees. So naturally it was serving volunteers, not refugees who had free meals from volunteers. I guess it's nothing i can or need to judge and it's how it happened to be but wasn't sure about this distinction between 'us and them'.

Every single man I talked with came to the jungle by himself. Some very young in early 20s and some late 20s and heard there were many teens in a same situation. Many of them lost their companions during the journey to Calais which is just too sad.

What should I do then? Vote for the right person? Donate more? Do more FB posting? Do more volunteering? Do a great job at the UNHCR? Probably all of them. What an eye opener these 2 days were. 

박근혜 대통령 파면 기념



드디어 한시간 쯤 전 파면 선고가 발표되었다. 아침 사무실에 앉아 두근두근 조마조마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파.면.
지금 내 신분은 개인 SNS에 정치적 내용을 올리지 못하므로 뫅 뫅 뫅 이 기분을 어떻게 하지? 하다가 오래전 이글루스를 찾았다.



지난 1년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어느 순간에는 '길게 돌아서 내가 정말 하고 싶던 일을 찾았구나' 하던 시기도 있었다.


나는 분명 내가 아주 오랫동안 꿈꾸던 국제기구에 몸을 담고 일하고 있다.
그 꿈을 위해서 아주 갑자기 런던 생활을 중단했고, 서울로 귀국했으며, 남편도 고양이 츄이도 나를 따라 다 한국행을 단행했다.

8년동안 살고 일하던 런던을 떠나는 건 생각보다 훨씬 후련했다.
나는 내 부모와 형제, 오랜 친구가 가까이 있는 한국 생활 6개월만에 아주 큰 안정을 되찾았다.
동시에 내가 사회초년생 생활 2년만에 왜 한국에서 다시는 일하지 않겠노라 다짐했었는지 이유도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한국은 여성이 일하기 어려운 국가였다.
지금 몸담은 국제기구의 management의 90%는 여성이다.
한국은 여성 뿐만 아니라 나이든 사람이 일하기 어려운 국가였다.
지금 몸담은 국제기구의 management 또한 나보다 대부분 나이가 많다.
한국은 work and life balance 개념이 아직 잘 세워지지 않은 국가였다.
한국의 HR 시스템은 리더가 되는데 필요한 자질을 가꾸도록 management를 종용하는 데 관심이 없었다.
그러므로 Management는 리더가 아닌 '보스'들이다.
그들은 일하기 어려운 국가에서 좋은 직장을 잡았고 그것을 놓치고 싶지 않아하는 당연한 욕망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욕망과 또한 나의 욕망과, 일하기 어려운 국가를 만들어놓은 그간의 정치 상황과, 8년만에 두세 배로 뛴 물가와, 기구 안에서의 정치는 서울에 돌아온 나를 오랫동안 흔들어놓았다. 아직도 그렇다.


문재인이 당선되어 정권이 바뀌고 삼성의 헤드가 구속되어도 단기간에 서울의 업무환경이 스톡홀름, 오슬로를 따라잡을 수 있진 않을 것이다.
서울의 업무환경이 스톡홀름처럼 좋아지면 나는 100% 행복할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스님이 자꾸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인생 최고의 행복은 마음이 편한 것이다. 아무리 돈이 많고 명예가 높아도 마음이 편치 않으면 행복하다고 볼 수 없다.
그러기 위해선 너무 욕심 내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직업적 성공에 욕심이 난다.
계속 고민해야겠다.




그래도 박근혜 전대통령의 민간인화는 축복이다.

오랫만에 가슴 터지게 기쁜 날이다.






2015년 마지막날 삼실



프로젝트 evaluation 쓰다가써야하는데 하루종일 혁오밴드 듣다가 벌써 두시가 넘었다. 아니 이 기타와 이 목소리라니. 내년에 글라스톤베리 오나요. 물론 나는 와도 사람 많아서 안가겠지만. 언젠가 라이브로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 맥밀란 5층에는 단 일곱명이 앉아서 일하고 있다. 평소에는 아마 백오십에서 이백명 가량 일하는 거 같은데. 당연히 우리 디비전 중에는 나 혼자만 나와서 일하고 있고, 푸하하 덕분에 나는 이 글을 여기에 지금 이 시간에 쓰는 악행을... 
주 느끼는 거지만, 영국 참 널널하게 일한다. 


삼성에서 나와서 맥밀란으로 옮긴지 10개월이 되었구나. 올해 마지막날이라니까 왠지 근황을 정리하고 싶어진다. 

* 참고로 맥밀란(정확히는 맥밀란 캔서 서포트)는 영국에서 두번째로 큰 암환자 관련 자선단체다. 나는 여기서 시니어 마케팅 프로그램 매니저로 일하고 있으며 주로 하는 일은 영국 일반인들을 상대로 기부금 모금을 위한 마케팅 활동. 

'파는 것'이 다를 뿐 사실 이전에 하던 프로덕트 마케팅이나 제약업계 PR 업무랑 엄청 다르지는 않다. 여기서도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광고 결정, 광고 디자인, 에이전시 선정 및 브리핑, 고객(기부자) 응대, 끝나고 평가 등을 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꿈이었던 자선단체에서 일하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괜찮았다. 

* 일단 내가 하는 일이 다수의 사람들을 직접적으로 돕는 일이라는게 굉장히 기운이 난다. 단체의 특성상 환자들의 얘기를 많이 듣거나 읽게 되는데, 그렇게 죽음과 매일매일 간접적으로 대면하는 상황이 작은 것을 더 감사하게 만들어주는걸 깨달았다. 나는 건강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고, 내 가족과 지인, 친구들 모두 건강히 지내고 있다는 게 굉장히 운이 좋은 기적과도 같은 거라는 걸 알게 되었다. 

* 출, 퇴근 시간이 9-5로 칼 같고, 내 시간이 많아지니까 집에서 매일 저녁을 지어먹고 거의 매일 운동을 하고 책을 훨씬 많이 보게 되었다.

* 사내 분위기도 굉장히 좋고, 특히 트레이닝 코스와 HR policy가 굉장히 인상적이다. 
영국이 차별대우에 대한 법이 (한국에 비해) 잘 되어 있는 건 알았지만 삼성에 있을때는 그게 실제로 적용되는 적이 별로 없어서 잘 못느꼈는데, 확실히 여기는 성별, 민족, 언어, 나이, 결혼 유무, 성적 취향, 외모 등에 대한 차별에 대해 굉장히 민감하며 잘 지킨다는 걸 느꼈다. 몇달 전 페이스북에서 슬쩍 본 기사에 나온 [대기업에 입사한 사회 초년생인데 부장급들이 매일 '여자는 집에가서 밥이나 하지 왜 회사 다니냐'라는 말을 해서 너무 힘들어요] 보고 기겁했다. 일단 여긴 그런 쭉정이들은 용납되지 않는 사회라는게 감사하다. 


채리티로 옮기면서 내가 우려했던 건 적은 연봉과 차가 없어지는 거, 영국인99.99% 동료, 새로운 업무에 대한 적응.. 정도였었다.
 
* 연봉은 대략 15K 깎아서 옮겼다. 젊은 나이부터 돈때문에 하고싶은 일을 못해보는 바보짓은 하고 싶지 않았고, 사실 연봉이 확 깎이면서 세금 요율도 낮아져서 괜찮다. 삼성시절과 비교해서 라이프스타일을 바꿀 정도로 수입이 달라지진 않았으니 결과적으로 보면 아무 상관 없는거였다. 차가 없어진 건 아주 가끔 시골로 여행갈때나 비오는 날 버스 기다릴때만 조금 불편했고, 출퇴근을 버스로 하니까 책을 많이 읽을 수 있어서 너무 좋다. 내가 운전을 그렇게나 싫어했구나..를 매일 운전해서 출퇴근하지 않게 되니까 깨달을 수 있었달까. 

* 영국인 99.9% 동료. 아아아.. 더군다나 내가 있는 12명 팀은 죄다 20-30대 영국여자들이다. 전형적인 깍쟁이 여자들, 그 중에 대다수는 extroverted인 가운데 introvert + 대인기피증 있는 내가 끼어들어서 적응하는 게 처음에 굉장히 힘들었었다. 맥밀란 전체 1000명가량 중 한국인은 나 한명인거 같다. 딱 나같은 성격인데 영국에서 임원급까지 올라간 롤모델 한 명 있으면 참 좋겠다.. 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그러니까.. INFJ 타입의 내성적이고, 나서는 걸 싫어하며, 아빠가 외교관이라 세살때부터 시애틀 10년 두바이 5년 런던 10년 살았어요 이런애 말고, 나처럼 알파벳 중1때 처음 배운, 영어가 생짜 외국어이며, 성인이 되어서 영국에 처음 와서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올라가서 마케팅 & 커뮤니케이션 부분에서 성공한 한국 여성 말이다. 어디 안계신가요. 아 열렬히 보고싶어요. 



아. 세시 반이다. 공휴일 전날은 세시반 퇴근이라고 말 했던가? 푸하하
짐싸야지



The Theory of Awesomeness Infographic 런던 일상



The Theory of Awesomeness Infographic

출처: http://mindvalleyacademy.com with this graphic.

요새 근황

** Game of Throne 스포일러 주의 ***



* Joffery가 드디어 죽었다. 주변에서 이번 시즌 4 에피2가 완전 대박이라더니 이유가 있었소. 어제 그거 보고 기뻐서(...) 한참 기사 찾아보고 트위터 뒤져보고 그랬다. 
여러번 느끼지만 Game of Throne은 캐스팅의 승리다. (배우에겐 미안하지만 / 혹은 배우의 명연기로) Joffery역은 처음 등장부터, 그러니까 아무 말 안하고 그냥 얼굴만 비추었을 때부터 재수없었다.
시즌이 늘어나고 인기가 많아짐에 따라 돈도 많이 쳐들여서 소품 퀄리티가 높아진 것도 즐거움.
그러나 시도때도 없이 나오는 정사씬과 gory한 싸움씬은 이제 좀 그만 했으면...


* 2주 전부터 하루에 한두번씩 심장이 발작발작 한다. 이게 panic attack인지 그냥 스트레스인지 아님 아버지쪽 유전이 심장병이 있는데 나도 걸린건지 아직 모르겠다. 가만히 앉아 있거나 운전하거나 가볍게 걷는 도중에 심장이 목구멍 밖으로 뛰쳐나올 정도로 갑자기 심하게 뛰고 식은땀, 어지러움, 공포가 밀려온다. 그 공포가 뭔고 하니, 갑자기 중력이 없어진달까, 자리에 앉아 있는데 마치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느낌이 들어서 뭔가 붙들고 있어야 하는 이상한 공포다.
그 동안은 엄청 심하지 않아서 병원 갈까 말까 했는데, 일요일 점심에 부사바에타이에서 진상 한번 피운 이후로 안되겠다 싶었다 - 점심 먹고 일어서려는데 갑자기 심장이 뛰더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이 철철;;; 종업원 난리나고 일행들 난리나고 대략 10분 후 탈진-_-;;
월요일 아침부터 GP 갔더니 목요일 오전에 피검사, EPC (심전도?) 검사 잡아준다. 24시간 심박수 트래킹도 하겠단다.
음. 별일 아니겠지.
살다보니 별일이 다 있다.


* 아픈김에 아트스타코리아 1,2회 연달아서 봤다. 혜영언니를 TV에서 보니까 신기하대. CJ에서 후원해서 그런지 프로그램 시작은 완전 광고인 듯.
노래나 춤도 아니고 아티스트를 정해진 시간 안에 서바이벌 방식으로 가려내는 게 타당한가 / 가능한가 / 누가 누굴 평가하는데? 등등 싶었는데 2회쯤 보다 보니 좀 수긍이 가는 부분도 있었다. 아직까지 인상은, 아티스트 자신이 얼마나 자신의 작품에 확신이 있는지, 대중에게 어떻게 설명하고 소통할 수 있는지, 평가자의 질문에 얼만큼 잘 답변하는지 (답변의 기준이 바로 자신이 얼만큼 자신의 작품에 대해 완벽히 인지하고, 의도한 바를 표현하는지에 달린 것 같음)가 관건 것 같다. 나같은 비전공자는 일단 그정도.
암튼 결론은, 꽤 재미있다 + 혜영언니 화이팅.
런던에서 보던, '아.. 저런 사람이 연예인을 하는 거구나, 저렇게 자신을 표현하기 좋아하고 끼가 많은 사람이 연예인을 하겠구나' 싶었는데 그 길을 잘 찾아 가고 있는 듯.




엄마 생각

"요새는 즐거운 일이라곤 하나도 없이 힘들어 죽겠다. 너 그러고 있고, 니 오빠도 이제 직장도 없이 그러고 있을거 생각하면 살 맛이 안나"


듣고 생각했다.
자식에게 일어나는 일이 곧 당신 인생 자체가 되어버린 엄마 인생이 참 안쓰럽고 위험하다고. 나는 자식을 낳아본 적이 없어서 원래 다 그런건지 그럴 수 밖에 없는건지 우리 부모가 유별난건지 아직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그래도 그런거 좀 위험한거 아닌가.

둘 다 서른을 넘긴 자식들이 살다 보면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의 경우의 수가 얼마나 많은데.
직장을 그만 둘 수도 있고 갑자기 1년동안 세계일주를 떠날 수도 있고 결혼을 안할 수도 있고 했다가 이혼을 할 수도 있고 출가하여 스님이 될 수도 있고 성 정체성을 재발견할 수도 있고 대체 에너지를 개발해 인류에 공헌할 수도 있고 탄 비행기가 하이잭 될 수도 있고 대마초 피다 걸릴 수도 있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평화협정을 이끌어낼 수도 있고 그런다고 하다가 쥐도새도 모르게 사라질 수도 있고 사실은 이게 다 트루먼쇼여서 엄마가 낳은 자식이 아닌 걸수도 있는데 그런거에 일희일비하면서 엄마 인생 전체가 거기에 휘둘리면 이거 어디 힘들어서 살겠습니까.

가족으로서 부모님 걱정 하고 그들에게 일어나는 일이 궁금하고 아프시면 마음 아프고 어디 놀러라도 가시면 괜히 내가 기분 좋고 그런건 나도 느껴봐서 아는데.. 그리고 나도 어짜피 그 가족에서 태어나고 길러졌으니 좀 과하다 싶게 부모님한테 일어나는 일에 내가 심하게 걱정되고 그런것도 아는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요. 우리 엄마 위태위태하다고.


그래서 결론은 여자도 애기 낳고 직장으로 돌아가야한다? 아니면 애는 15살까지만 올인하자? 아무리 더럽고 불싸질러버리고 싶고 부조리하고 아침에 일어나기 싫어 침대에서 오징어 굽는 직장이라도 내가 스스로 내 인생의 주도권을 쥐고 살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아 뭐. 돈이 쓰고 죽기도 넘치는 상황이라면 직장 대신 취미생활..정도의 우아함도 좋겠지만.


직장 멘붕


* 요 며칠 직장 멘붕, break down, melt down.

* 들어온 지 6개월 된, 타블렛 마케팅 매니저 카타리나가 어제 갑자기 'I handed my resignation yesterday' 한다.
으아아아아 너까지 그만두면 어떡해 난 그나마 같은 고생하는 너라도 있어서(?) 참을 수 있었는데 우아아앙 해버렸다. 심지어 그 아이는 다른 직장 잡아놓은 것도 없이 너무너무 넌더리가 나서 나간단다. 보스한테 2개월쯤 전에 이미 너무 힘들다고 말했는데 달라지는 건 (당연히) 없고, 결국 혼자 끙끙대다가 그만둔단다. (근데 그 보스도 이미 지난달에 나갔다. 그가 나갈 때도 다른 직장 찾은것도 아닌데 그냥 넌더리내고 나갔다. 아아 이 콩가루 회사)

아아아. 나도오. 나도 나가고 싶단 말이야아아. 내 보스는 내가 찡찡대면 '더 오래 더 열심히 일해봐' 이러고 (보스 지도 지금 열심히 헤매고 있고), 나 이 삽질을 지난 4년간 했단말이야. 근데 난 비자가 없으므로 회사를 나가면 런던을 나가는거라고 시발나왜외국인노동자야-_-


* 분석 시작. 나 왜 힘들지.

1. 이거 일반적인 직장 사춘기인가. 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지. 이 집구석(회사구석;)의 고질적인 문제점. 정확한 매니지먼트 다이렉션 없이 중구난방. 오늘 이 결정 했다가 내일 번복. 그러니까 실무자는 죽어나. R&R이 불분명해서 나같이 편리한 마케팅 매니저라는 이름을 달고 있으면 트레이닝 플랜부터 회사 자사 스토어 프로모션까지 다 끌려들어가. 거기다가 뭐 하나 잘 못되면 마녀사냥 모드. 그러니까 말싸움 잘하는 놈은 잘나가고 승진하고 잘 버티고 나처럼 멘탈 말랑말랑한 것들은 맨날 울어. 아 쫌. 삼십 넘어서 집밖에서 우는건 이제 좀 안할 수 없습니까.


2. PMS인가. 지금 생리중이고 최근들어 가끔 침대에서 일어날 수도 없을 정도로 생리때 힘들었는데 이번에도 첫 이틀 너무 힘들어서 회사 기어서 들어옴. 원래 이럴땐 인생의 중요한 결정 내리면 안되는건데. 그냥 put my head down and work work work 하려고 했는데 불쑥불쑥 미치겠다. 요즘 식욕도 없어서 별로 안먹고 사는데 어제 저녁에 쫄면을 먹다가 그 안에 들어있는 엄마가 이번에 해준 오징어 무침을 먹다가 눈물 뚝. 아 그래도 엄마란건 딸이 밉다고 저주를 퍼부르면서도 오징어무침을 만들어서 싸주는 거구나 이러면서 궁상궁상. 이정도면 정상 멘탈은 절대 아니다.

3. 그래 그럼 생리중이어서 좀 더 멘탈이 간걸로 하자. 이상한 결정같은거 내리지 말고 가급적이면 사람들 안만나고 말 조심하면서 일주일만 버텨보자.


그리고 저녁마다 네시간씩 폭풍 CV 돌리기.
4월에 면접 왕창 보고 붙은 다음에 5월에는 4주 노티스 기간, 6월부터 새 직장으로 출근할테야. 비자없이 런던에서 새 직장 잡는 기염을 토해보겠어.

빠샤.



아 쫌. 런던 일상


1. 성공한 수많은 예술가들도 그들이 뭘 원하는지 모르던, 어떻게 사람들과 소통하고 자신의 커리어를 발전시켜야 할지 막막해 하던 힘든 시기가 있었음을 잊지 말자. 이 길이 나 혼자 가는 길은 아니다.


2. 페이스북에서 건너건너 확 끌리는 동성 인간을 보고 그녀의 사진을 캡처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나 바이섹슈얼이야? 그러고보니 나 길에서 매력적인 여자들 (다리.. 특히) 보는거 좋아. 그러다가 십초 안에 간단히 결론. I don't wanna touch other woman's vagina.


3. 너무나 한국적이고 유익하고 계몽적이고 상상력 및 융통성과 거리가 먼 내 부모와 가까이 지내면서 becoming what I truly want to become할 수 없겠더라.
존 카메론 미첼이 숏버스 찍을 때 '어머 이런거 엄마야랑 아빠야가 보면 싫어할텐데 어쩌지' 그런 생각 했겠어? who gives a shit.
제임스 더글라스 모리슨이 상징적으로 어머니를 범하고 상징적으로 아버지를 살해한 뒤 다시 태어나 짐 모리슨이 되었을 때, Light my fire를 울부짖을 때 그가 가족에 대한 부양과 효도의 의무에 대해 고민했겠어?

아.. 난 말랑말랑하게 늙고 싶지 않다고. 좀 더 치열하게 느끼고, 더 많은 가능성을 시험해 보고, 딱딱하게 날을 세운 촉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도덕이고 현실이고 돈이고 나발이고 쫌. 아 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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