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왔다. 런던 일상


홍콩 1주, 한국 1주의 아주아주길게 느껴지던 일정을 마치고 런던에 돌아왔다.


한국은 예상했던 것보다 엄마의 반대 혹은 저주/원망 때문에 훨씬 힘들었고 그래서 주변 가족들도 많이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 시간도 다 지나가고 난 이제 하루에 200통이 넘는 이메일이 오는 사무실과 작은 내 런던 집으로 돌아왔다. 사무실에 오자마자 내가 핸드오버했던 데드라인 중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에이전시로 쫓아가 닥달하는 미팅을 해야 했고, 미팅에서 돌아오는 블랙캡 안에서 보는 런던 풍경은 묘하게 낯설었다.

이튿날 오늘. 거실에서 츄이를 무릎에 앉히고 아침을 먹고 책을 보는 새벽 4시. Game of Throne에서 Ned Stark이 죽을락말락하여 심란한 마음으로 책을 덮고 혼자 생각했다. 나 지금 행복한가?

김어준씨는 어서 빨리 너 자신을 대면하여 네가 뭘 했을때 행복한지를 찾고, 지금 당장 그 일을 하라고 종용한다.
내 오빠는 내가 한국에 있던 둘째날에 회사로부터 권고사직 통보를 받고 다음 회사는 지방으로 가야할까 고민중이었다.
내 엄마는 30년이 넘도록 폭력적인 아버지 아래서, 힘든 노동으로 버텨온 평생의 과업이 무너지는 순간을 딸래미가 외국인과 결혼할 순간으로 착각 혹은 결정하셨다. 그래서 그렇게 나를 아주 쉽게 죄인으로 몰아부치고, 서른이 넘은 나는 그런 엄마 앞에서 일곱살짜리 애마냥 그냥 울고만 있다가 왔다.

그런 엄마 앞에서, '행복은, 서른 넘은 딸이 엄마랑 같이 살면서 매일 갖다 바칠 수 있는 게 아니라 엄마 스스로 엄마 인생에서 찾아야 하는 거'라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엄마가 놓친 행복의 수많은 기회를 생각했다. 그러면서 내가 놓치고 있는, 놓쳐버린 기회가 뭘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회사는 내게 런던에 머물 수 있는 비자와, 영국 평균을 웃도는 월급을 주고 있고, 나는 그 곳에서 많은 것을 배웠지만 4년이 넘어가는 지금 자꾸 내가 해보지 못한 다른 것들에 대한 욕심이 생긴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본 Julie & Julia에서 두 여성이 직면하는 어려움이 어쩌면 내가 겪는 것과 저렇게 같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재미없고 고단한 day job, 이제 30대인데 이루어놓은 건 없는 것 같고,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뭔지 잘 모르겠는 막막함, 그러다가 자신이 좋아하는 요리를 통해 자신의 인생을 바꾸고 다른 사람에게 영감을 주었던 그 (뻔한) 스토리를 보면서 무릎을 막 막 치고 있었다.

나는 UN에서 humanitarian 업무로 일해보고 싶다. 세계일주도 할거고 계속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전시를 보고 여러 나라, 여러 문화권에서 살아보고 싶다. 그런데 벌써 스물 일곱부터 서른 하나를 한 직장 마케팅 부서에 매여 있었다.
마흔이 되었을 때의 내가 꿈꾸는 모습은, 영어와 프랑스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UN 정직원으로 일하며 세계일주를 이미 마쳤고, 톰과 두 아이와 츄이와 함께 지구 어드메선가 행복하게 사는 모습이다. 나는 그 상황을 내가 아닌 다른 누구도 대신 만들어줄 수 없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고, 그래서 내 스스로 그걸 얻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가방끈이 짧고 사회경험이 전혀 없었던, 그리고 시작하자마자 실패했다고 결론지은 결혼생활 초기 26살의 가난한 엄마에게 얼마나 많은 꿈과 그걸 이루기 위한 기회가 주어질 수 있었을까. 그런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열심히 살아온, 두 자식을 장성하게 키우고 수저 두 벌에서 시작해서 그 넓은 땅을 가진 엄마를 누가 비난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조금 더 기다리면 다 이해해 주실거라고 얘기해주는 주변인들 말처럼 그냥 눈감고 귀막고 기다려야지 뭐. 결혼이 급한 것도 아니고 언제 하든 크게 달라질 건 없으니.
그래도 참 너무한다. 부모와 자식간에도 인간에 대한 예의라는 게 있는데, 그런거 다 무시하고 나한테 그렇게 폭언과 저주를 퍼부을 정도로 내가 그렇게 잘못한걸까. 난 나름대로 타국에서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이러고 있고, 톰도 똑같이 열심히 사는 멀쩡한 남의 아들인데 그게 그렇게 못된 일일까.









...어디선가 방구냄새가 난다. 이게 무릎 위의 츄이가 뀐건지 내가 뀐건지 모르겠다. 난 기억에 없는데..




덧글

  • 2014/03/26 08:43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mae 2014/03/29 17:19 #

    감사해요 :) 저보다 아마 훨씬 더 길고 힘든 시기를 보내셨을 듯..
    맞아요. 환골탈태의 기분, 혹은 한국 부모님 댁에서 런던 집으로 오면 항상 타임머신 타고 여행한 기분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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